우리 나라 중에서 사계절을 불구하고 가장 기온이 따뜻한 지역라는

대구의 날씨가 궁금해서 호기심에 찾아 갔다.

대구만 유일하게 특수 기후 지역으로 분류된다는 점이 너무 신기하다!!


대구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가 본 곳이 이상화 고택이었다.








대표작으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로

제목만 들어도 험란한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은

시인이자 작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셨던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이상화의 업적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이상화 시인은 미술, 문학,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뛰어난 실력도 있으셨나 보다.

이렇게 다양하게 업적을 남기셨다니..!!





그 당시에 출간한 문예지나 잡지에 글이 실린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상화 시인과 함께 한 대구의 근대 역사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다.





고택안에는 이상화 시인의 기념비도 있다.

왠지 모르게 저 비에 새겨진

문구를 읽으면 숙연해지는 느낌이 든다.

일제 시대에 저항하기 위한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하신 경력으로 인해

그의 문학에는 결의가 담겨져 있다.





이상화 고택에는 그가 생활하면서

쓰던 살림살이 등도 볼 수 있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사라진 부분도 있겠지만

단촐하지만 깔끔한 세간붙이들, 필요한 것들만 정리되어 있는 점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안방에도 훵하니 그의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와 사진들로만 전시되어 있다.





이상화 시인이 집필한 원고나 서적이

이 곳에서 탄생했겠지?

암울한 일제시대 속에서

꽃과 같은 그의 걸작들이 탄생했으니

시대가 어려울수록

좋은 작품들이 잘 탄생하는 이유가 뭘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상화 고택 옆에는 서상돈 고택도 있다.

서상돈은 이상화와 같은 시대에 살던 인물로 

독립운동을 하였고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베와 무명)상으로

성공하여 정부의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던 기업인이자 공무원이었다.





 

이상화 고택과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의

서상돈 고택 모습이다.





독립운동가였던 서상돈의 집도

청렴 결백한 선비처럼

필요한 세간만 있고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다.





당시에 사용했던 세간붙이를 볼 수 있다.

오래된 물품이지만

가지런하고 단정한 모습이다.





붉은 벽돌의 아치형 담장 모습이다.

목조 건물과 붉은 벽돌의 어우러짐이

이질감이 약간 느껴지지만

근대화로 가는 시대였으니

당연한 것이겠지?


 



서상돈 고택도 천천히 둘러보고 다음으로 이동했다.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 벽에 시와 사진이 걸려 있다.

청라언덕은 대구에 기독교가 정착하고 성장했던 곳이라 한다.

선교사들이 담쟁이식물을 많이 길러서

청라언덕이라 불리웠다 한다.





이상화 시인의 멋진 모습이 담겨진 벽화가 참 마음에 들었다.






계산오거리에 위치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고딕건축으로 제작된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계산 성당이다.





이 곳은 챔니스 주택이자 의료 선교 박물관이다.

1870년에 건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 한다.

유형 문화재로 의료 선교사가 그 당시에 사용하던 물품이나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선교사 스윗즈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거주한 스윗즈 주택이다.

89년도에 대구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선교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통 한옥과 서양의 양식이 합쳐진 특색있는 건물이다.







청라 언덕에 있던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웅장한 모습의 건물이다.





골목을 지나가다가 본 벽화에 아이들의 익살스런 표정이 너무 귀엽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도 있다.

전통과 현대로 넘어오는 격변하던 시기의 대구 역사를 알아보는 여행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대구로 가서

못봤던 박물관이나 역사관을 보고 와야겠다.


Posted by 아야노고를 love하는 bin's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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